(장문) 두 번의 로스쿨 입시 후기와 리트에 관한 생각

by ㅇㅇ posted Feb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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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 (언 28개/68.2, 추 33개/81.9) / 90.4 / 영어 만점 / 제2외국어 최고등급 + 교환학생 1년 / KY 사회계열 졸업, 자교 사회계열 석사 수료

시립대, 성균관대 최초합

목차

0. 들어가기 전에 

1. 로입 준비 배경 

2. 초시

3. 재시

4. 리트에 관한 생각

5. 마치며 

(1~2는 개인사라 입시 정보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으니 참고해주세요) 

0. 와 드디어 그렇게 쓰고 싶었던 합격수기를 쓸 수 있게 됐네요. 두 번의 입시 과정과, 그 과정에서 해왔던 생각들을 조금 정리해서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진솔하게 쓴다고 쓰다보니 절 아는 분들은 바로 특정 가능하실 텐데, 모른 척하고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ㅎ 이 로갤용 계정도 이제 딱히 쓸 일이 없겠네요. 자주 쓰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정들었는데(?). 

1. 로스쿨을 처음 생각한 것은 학부 졸업반 시절 국제법 강의를 들으면서였습니다.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로스쿨 진학을 잠깐 고민해봤는데, 선택법 중에서도 인기 최하위를 달리는 것이 국제법이라는 말을 듣고 그냥 일반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공부하고 싶은 게 많았거든요. 학점도 구렸고요(재수강/학점 지우개도 하기 싫어서 안 했습니다. 학점 신경 좀 쓸걸 ㅋㅋ).

그렇게 대학원에 진학해 열심히 공부하면서 코스워크를 끝내고,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공익이라 여유시간이 꽤 있어서, 전공과 거리가 좀 있지만 늘 관심이 있던 분야들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논문도 하나 써봤고요. (결국 학술지 게재에는 실패했습니다만...) 그러다보니 정작 전공은 점점 재미가 없어지더라구요. 사실 코스워크 말미에서부터 느꼈지만, 이 시기에 확실해졌습니다. 석사 논문조차도 쓸 자신이 없을 정도로 전공이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졸업 걱정을 하다보니 어느새 소집해제가 됐습니다. 마지막 공익 월급을 받고 통장 잔고를 보니 100만원이 찍혀 있었습니다. '와, 많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심한 회의감이 들더라구요. 어차피 돈 보고 시작한 공부는 아니었지만, (전공) 논문을 못 쓰는 인문계열 대학원생의 미래는, 글쎄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마침 주변에 전혀 다른 분야에서 로스쿨에 진학한 사람도 있었겠다, 저도 집리트를 쳐봤습니다. 132(구릿)가 뜨더라고요. 알아보니 인서울 각은 충분히 나오는 것 같았고, 이거면 됐다 하고 로스쿨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자교 이상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꿈을 꿀 학점이 아니기도 하고요. 

그렇게 주말마다 기출을 풀었고, 7개년도 평균 135을 기록해, 신릿(?) 기준으로 140대를 기대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실전에 강한 시험형 인간이라고 생각한 것도 있고요.

2. 첫 실전 리트는 집에서 먼 한 중학교에서 봤습니다. 멀어서 전날 인근 호텔에서 잤는데,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잠자리를 바꾼 게 문제였는지, 전날 일찍 편히 잔다고 마신 캐모마일차가 문제였는지, 아무튼 아침부터 머릿속이 뿌옇더라구요. 찜찜했지만 그래도 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시험을 쳤습니다. 그런데 언어에서 정말 처음으로 문제를 못 풀고 찍어봤습니다. 수1능부터 집리트까지 그런 적이 없었는데요. 하지만 저만 어려웠던 건 아닐 거니까, 추리도 그냥 열심히 풀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겨우 언어 채점을 해보니, 헷갈린 문제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틀렸습니다. 두 번을 더 채점해봐도 그대로였습니다. 11문제를 틀렸더라구요. 다행히 비교적 약했던 추리를 평소보다 잘봐서 총점 137.8로 (작년의 표점 인플레를 고려하더라도) 상당히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체감상으론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집리트 평균이 135였고 첫 집리트가 구릿 132였으니 놀랍게도 평소 실력대로 나온 셈이라 억지로 그려려니 했습니다. 그냥 집리트 풀면서 눈이 높아졌던 거죠. 아껴두다가 마지막으로 풀었던 20 기출은 140대 중반이 나왔으니까요.

채점 당일에는 지거국에서 잘하면 경희 정도 라인으로 보였고, 이후 모의지원에서는 인설미니 안정 ~ 성균관 상향(1.5배수) 정도가 나왔습니다. 가군은 학점 90 이상 만점인 경희로 일찌감치 마음을 굳혔고('이 학점을 만점 취급해주는데!' + '굳이 내려야 하나?'라는, 지금 생각하면 순진하고 오만한 생각이었습니다), 나군은 성-서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두 군데 자소서를 다 써놓고 고민했는데, 떨어지면 한 번 더 보고 말자는 마음으로 성균관대를 질렀습니다. 대단한 정성은 없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여긴 적지 않는) 경험을 바탕으로 눈에 띌 만한 진로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니 혹시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경희가 안정(1.2배수)이기도 했고요.

이후 포스트리트도 주변인들에게 자소서 첨삭도 받고, 면접 스터디도 돌리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운좋게도 같이 스터디했던 분들이 다들 좋은 분이었는데, 함께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잘들 지내시겠죠?) 그렇게 경희대와 성대에서 면접까지 봤고, 스스로 느끼기에는 무난했습니다. 적어도 못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합격자 발표 당일이 되어 새어나오는 기대감과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경희대 합격자 발표를 확인했습니다. 안정지원이었음에도 제발 불합만은 아니길 바라면서 수험번호를 입력하니 하필 그 불합이 뜨더군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확인한 성균관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경희대는 추합이 많이 도니까'라는 생각만으로 12월을 버텼습니다. 그렇게 2월까지 보내야 했습니다.

3. 사실 1월 말이었는지, 2월 초였는지, 그 즈음부터는 현실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대학원 졸업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위논문을 구상하고, 거기에 무얼 더 하면서 재시를 준비하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로스쿨생도, 석사학위 소지자도, 논문 작성자도 되지 못하고 그저 무가치한 고학력(?) 무소득 룸펜일 뿐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너무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인간'이 되려고, 그리고 가능하면 로스쿨 입시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공익 복무 경험을 살려(?) 자교 장애학생 지원센터 도우미 활동을 신청했고, 모 비영리단체에서 번역/편집 일(봉사? 대외활동?)도 시작했습니다. 두 활동이 정말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학기 시작 전에 결국 학위논문은 포기하고 수료생으로 남기로 했는데, 문과 석사 수료생이라는 정말 이도저도 아닌 신분으로 있으면서 저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정말 소중한 기회였거든요. 비록 굉장히 작은 일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됐습니다.

그러는 한편 주변에서 로스쿨 준비하는 친구 둘을 찾아서 같이 리트 스터디를 꾸렸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었고, 그냥 스터디카페에서 만나서 실전 시간(시각까지) 맞춰서 풀고 채점하고, 같이 점심 먹고, 문제 하나 하나 다시 짚어보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다들 쉽게 넘어간 문제 몇 개는 그냥 넘겼지만요. 재시생이라 어차피 점수가 중요한 건 아니었고, 이렇게 시간 맞춰 풀어보는 연습을 하고, 기출문제를 좀 더 깊게 분석하고 하는 데 의의를 두었습니다. 한 번은 버스를 잘못 타서 언어 시간을 20분인가 빼고 풀어야 했던 적 있는데, 그러면서 정말 극한의 실전 훈련이 된 것 같기도 하네요.

실전은 다행히도 자교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익숙한 곳이라 확실히 편안한 분위기에서 볼 수 있었네요. 본가가 멀지만 수 년간 통학하던 기분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하철 타고 학교로 갔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1교시 수업 들으러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스터디원 한 명도 우리 학교에서 봐서 중간에 살짝 긴장 풀고 쉴 수도 있었습니다.

언어는 1번 문제부터 꽤나 고민을 했습니다. (한참 고민했는데 결국 틀렸고, 고민하다 버린 선지가 맞았네요.) 그래도 생각보다 시간이 여유롭길래 열심히 풀어나갔습니다. 그렇게 중간 정도 풀었는데, 어 다시 보니 문제당 시간을 잘못 계산했네요. 여유롭지 않고 그냥 간당간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이미 다 쓰고 있던 집중력을 더 끌어다 풀었습니다. 시간 모자라는 줄 알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풀었던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에 아 이게 함정이구나, 이거 못 봐서 틀리는 사람 꽤 나오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그런 생각 하고 있을 여유가 없으니 애써 다음 문제로 넘어갔고, 아슬아슬하게 마쳤던 것 같습니다.

추리는 아직도 생각나네요. 분담금 문제에서 시간을 엄청나게 소모하고 결국 틀렸습니다. 보통 이런 류 문제는 시간은 좀 써도 결국 맞히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뭔가 가정 여러 개 중첩한 게 집중이 잘 안 되더라구요. 그때문인지 이번엔 추리에서 처음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5분 남은 상황에서 서너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문제당 (체감) 30초 내에 후딱 풀어서(사실상 찍어서) 마킹해두고, 남은 2, 3분을 최대한 활용해 마저 마무리했습니다. 그 시간에 찍은 것 중에 한 문젠가 두 문제 답을 바꿨는데, 실제 점수가 나오고 보니 가채점보다 하나가 더 맞았더라구요. 그 2, 3분이 정말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논술은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풀었습니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도착하고, 답지가 뜨자마자 용기를 내서 바로 직접 채점했습니다. 생각보다 금방 끝나더라구요. 언어 1번부터 틀려서 작년처럼 헷갈린 건 다 틀리는 거 아닌가 식겁했는데, 다행히 이후로 하나밖에 안 틀렸습니다. 추리는 중간에 생각보다 많이 틀렸지만 그래도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언어 28/추리 32라는 가채점 결과가 나왔고, 이번에도 로입에 실패하면 다른 길을 알아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는 작년에 '안정지원'으로 떨어진 경희 대신, 정량대로 알려진 시립, 그리고 원래부터 최고 목표로 삼았던 성대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가군(미니)은, 다 붙여준다면 인원이 많은 경희를 가겠지만, 카오스로 유명한 데다가 작년에 떨어지기까지 했던 곳이라(심지어 입설이었나 학점 재평가 오피셜이 떴죠) 아무래도 불안했고, 외대는 시립보다 학점과 정성을 더 봐서(?--이제 정확한 이유가 잘 기억나질 않네요) 시립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정성대로 유명한 서강이나, 학점 마지노선이 있다는 건대, 독특한 환산식상 선호하는 인재상이 저와는 정 반대인 것으로 보이는 더 일찌감치 후보에서 제외했고요.

나군에서는 자교와 성대, 그리고 이번에 환산식이 급격히 변한 한대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자교는 '혹시?'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추합을 고려해도 합격권에 못 미치는 배수로 지르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어 단념했습니다(특히 작년에 정성에서 밀려 떨어진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한대는 환산식상으로는 성대보다도 천하제일리트대회가 됐지만, 그 의도가 리트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인지(제게 유리), 자소서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인지(제게 불리) 잘 모르기도 하고, 특히 '그 점수로 성대 떨어질 자소서면 한대도 떨어진다'라는 조언을 듣고 성대로 굳혔습니다.

이번 포스트리트는 과락 면하기를 최우선과제로 삼았습니다. 작년엔 다소 독특한(eccentric) 자소서로 모험을 걸었다가 크게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무난하게, 딱 정량대로만 가고 싶었습니다. 메가에서 가장 유명한 강사분한테 자소서 첨삭도 몇 번 받아봤고, 합격자 자소서도 구해봤습니다. 감사하게도 학교 커뮤니티에서 자소서 봐주신다는 선배님께 첨삭과 조언도 받아봤고요. '새 자소서'가 '오염'될까봐 작년 자소서는 열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금 더 '전략적인' 자소서를 써냈습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작년 자소서는 참 '특이'한 걸 떠나서 '못' 썼던 것 같습니다. 최소한 효과적인 전략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올해 자소서도 잘 썼냐고 물어본다면 자신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 도움이 됐다고 느낀건, 그동안 해온 모든 활동을 엑셀에 정리하고, '법조인의 꿈'이라는(자세히는 진학동기-준비과정-진로계획 정도로 이어지는) 서사에 맞춰 분류, 평가해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렇게 주재료, 부재료가 정해지니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더라구요. 그 다음으로는 한 키워드(예컨대 '의료분쟁 전문 변호사' -- 물론 제 키워드는 아닙니다)를 중심으로 내용을 붙이고 쳐내고 정리한 게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작년과 달리) 자소서로 과락은 안 당했습니다.

면접 준비는 원서 접수를 끝내고 시작했습니다. 두 학교 각각 스터디를 구해서, 작년에 두 학교 면접을 경험해본 재시생으로서 스터디원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했는데,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이번에도 정말 감사하게도 좋은 분들만 만났는데, 다들 합격하셨길 바랍니다!). 아무튼 코로나로 여러 제약이 있는 와중에도 최대한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비교적 문제 형식이 명확한 성대는 기출 위주로, 상당히 즉흥적으로 진행되는(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1) 제시문을 면접관이 읽어주고 (2) 따라서 준비시간이 없다는 점을 빼면 제가 아는 다른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립대는 기출에 더해 최근 시사 이슈를 활용해 각자 준비해온 문제를 풀었습니다.

리트가 끝나고는 '포스트리트에서 과락 당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원서를 접수하고서는 '이젠 정말 면접밖에 안 남았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긴장이 풀리는 동시에 새로운 긴장감이 들었습니다. 면접이 끝나고는 '이젠 정말 할 수 있는게 없다'라는 생각, 허탈함, 해방감, 간절함, 그리고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로입은 정말 리트를 접수하는 순간부터 합격을 확인하는 순간까지 끝없는 불안감과 함께하는 것 같습니다. 모의지원 한 자릿수, 심지어 1등으로 지원했어도, 안심할 수도 없고 안심해서도 안 되는 것이 로입인 것 같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약 3주 가량을, 불안감은 마음 한켠에 한껏 제쳐두고 생각 없이 놀았습니다. 밤낮 바꿔가면서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인생 플랜B로 시작한 컴퓨터 공부도 하고(솔직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달래는 용도 + 평소 컴퓨터 공부가 제대로 해보고 싶기도 했음 정도였습니다)... 발표 한 사흘 전부터는 갑자기 긴장감이 확 들기도 하고, 발표 전날(사실 당일)에는 새벽 4시에야 잠들어서 7시에 잠이 깨더라구요. 먼저 나오는 시립대 결과 발표가 10시여서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심장이 뛰어서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모의지원 한자리수의 극안정이라는 데서 오는 기대감, 그럼에도 떨어질 수 있는 것이 로입판임을 몸소 경험한 데서 오는 불안감이 섞여, 시간이 지나는 걸 맨정신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것조차 부담스러웠습니다. 1지망인 성대는 안중에도 없고, 제발 시립대에 합격해서 이 불안을 끝내고, 최소한 불확실한 미래(뭐 먹고 살지???)에 대한 걱정을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살면서 가장 확인하고 싶었고, 확인하기 싫었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알아보기 어려운 UI 속에서 간신히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봤고, 그 의미를 두번 세번 다시 확인했습니다. 박수 한 번, 그리고 '됐다!'라는, 크지는 않지만 확실한 감탄사 한 번으로 끝나더군요. 바로 집에 있던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저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참 정신 없이 시간이 흘렀네요. 감사하게도 두 학교 모두 합격했교, 제가 가끔이라도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들 모두에게 축하를 받았고... 존재만으로도 응원이 되어주었던 주변 분들에게 나름대로 감사의 표시를 하고, 또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고민하고... 지금은 로스쿨에서의 삶은 어떨지 기대와 긴장과 불안이 반반반씩 섞인 도합 150%의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4. 법학적성시험. 딱 기출만 풀면서 준비해서 대단한 내용은 적지 못하고, 그냥 제가 생각하는 바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4.1. 언어이해. 어려운 (하지만 좋은, 즉 내용이 깊고, 틀리지 않고, 논리나 서사가 확실한) 글을 정복해나감으로써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경지식은 물론 많으면 유리하겠지만, 솔직히 밤에 나무위키 보면서 노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A가 B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라는 지식을 물어보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배경지식은 익숙함,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독해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저는 '빛(혹은 광자나 전자기장의 파동)'이라는 물리적 현상이 도대체 어떻게 내 눈이라는 곳에 자극이 되어 머릿속 '상(image)'이 되는 것인지 궁금해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빛의 스펙트럼을 보면 적외선-빨강-초록-파랑-자외선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렇다면 자주색(파랑+빨강)은 이 스펙트럼 상에서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도 궁금했습니다. 이건 스펙트럼에 나와 있지도 않고, 나타내기도 어려운 색이지만, 빨강, 초록, 파랑, 노랑과 '같은' 색이 아닌가요? 사실 자주색은, '다른 색과 똑같이', 우리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감각질qualia—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는 '빨강'은 여러분이 보는 '빨강'과 같을까요? 예전에 그런 글을 본 것 같습니다. 몇백 명 중 한 명 꼴로, 빨강을 보는 시신경과 파랑을 보는 시신경이 거꾸로 연결된 사람이 있다고. 만약 그게 진짜라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아니, 과연 알 수는 있을까요? 이런 궁금증의 연쇄를 따라 나름대로 감각질 역전inverted qualia 문제에 관한 문헌을 찾아보기도 했고, 색채 이론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시각이라는 주제에 관해서 이런저런 공부를 해봤으니, 이번 언어에 나온 시각 정보 지문(정확히 기억이 안 나네요. 풀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은 날로 먹었을까요? 아닙니다. 물론 제시문을 훨씬 편하게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편하게 '푼' 것은 아닙니다. 제가 공부해본 것은 색채이론과 철학 문제이지, 신경절세포 같은 생물학적 내용이 아니었으니까요. 안과의1사 정도 된다면 문제를 편하게 '풀' 수 있었겠죠. 그렇다고 의학을 공부해서 의학 지문에 대비한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결국 부랑자 지문이든, 시각 지문이든 똑같이 제시문을 충실히 정독하고, 문제를 읽고, 고민해서 정답을 골라내야 하는 것은 같습니다. 여기서 배경지식은 지문에서 다뤄지는 대상이나 현상이나 문제의 구조가 어떻게 된 것인지, 그 큰 그림을 그리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문제에서 물어보는 것은 디테일(혹은 큰그림 AND 디테일)이고, 이건 미리 알기도 어려울뿐더러 제시문에 다 나와있으니까요. 결국 제시문을 보면 됩니다. 어? 그런데 앞서 말한 큰 그림도 제시문에 나와 있네요. 결국 언어이해는 '주어진 시간내에 새로운 내용을 공부해서 '간단한'(사실관계, 논리관계를 확인하고, 이를 특정한 조건이나 상황에 적용하는 수준) 문제를 풀 수 있는가'를 묻는 과목입니다. 배경지식은 물론 있으면 좋지만, 배경지식으로 언어를 준비한다는 것은 다소 주객전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문에서 다루는 대상 자체가 복잡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이런 조건에선 이렇고 저런 조건에선 저런데, 두 조건이 모두 만족되면 요렇다!'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그건 추리논증이 진짜이고, 언어이해에는 그렇게까지 어려운 내용은 출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문장 자체가 길고 복잡하거나, 문장을 따라가기 위해서 복잡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경우일 겁니다. 알고 보면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텍스트 자체가 읽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그리고 이건 각자의 전공 분야 공부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적자면 이렇습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전공 공부를 시작하면서, 매주 수많은 논문과 책을 읽어내야 했습니다. 한 학기에 세 과목을 들었는데, 과목별로 매주 논문 다섯 편이나 책 한 권 정도를 읽어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논문이나 책의 내용에 대해서 답하거나 토론하거나 비판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전혀 쉽지 않은 글들인데도요. 그러자면 굉장히 효율적으로 읽고 생각해야 합니다. 대학원에서 배우는 여러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그것이고요.

간단히 말해, 논문이나 연구서를 유의미하게 읽어냈다고 말하려면 다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연구질문(논문이 답하고자 하는 질문 -- 왜 A는 B인가? 등 Why로 시작하는 질문)이 무엇인가? (2) 연구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무엇인가? (3) 기존에 제기된 답은 무엇이고, 무엇이 부족했는가(왜 저자가 추가로 연구를 진행해야 했는가)? (4) 저자의 답이 맞다는/더 낫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새로운 사실, 방법론 등)? (5) 본 연구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가(모자란 점, 더 발전할 여지 등)? 반대로 말하면, 이상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해당 논문/연구서의 핵심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길고 어려운 글을 읽어나가면서도 특정 부분이 중요한지 아닌지, 또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 부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읽은 논문과 책에 대해 (1) 이 연구는 어떤 연구이고, 왜 이 문헌을 읽게 됐는지, (2) 이 연구는 어떤 내용인지(위에서 언급한 5가지 항목), (3) 내가 생각하는 이 연구의 부족한 점, 좋은 점, 참신한 점은 무엇인지, 관련 연구와의 접점은 무엇인지, 내 관심사와 어떤 연관을 갖는지, 그 외 코멘트 등을 정리해 블로그에 꾸준히 기록해왔습니다. 그리고 이게 독해력을 기르는 데 굉장한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리트 공부하자고 이런 공부를 몇 년씩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비효율일 것입니다. 그냥 평소부터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해서 이렇게 공부한다면(학부생이라도), 그냥 전공공부 열심히 하는 훌륭한 학생이 되는 것이고, 또 전공 실력이 쌓이는 것이고, 거기에 더해서 보너스로 리트 언어이해 대비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의 도입 취지에도 부합하겠네요). 당연히 단시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만, 효과 자체는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한 내용을 혼자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교수님이나 학우 등 다른 사람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다른 시각을 접하고 생각을 발전시켜나간다면 더더욱 좋을 것입니다(그러다 일반대학원에 납치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하나 덧붙이자면, 빠르게 읽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읽는 것이 우선입니다. 정확하게 읽을 수 있으면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빠르게 읽을 수 있다고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움이 되는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악기 연주의 경우도 같습니다. 한 곡을 마스터하려면 먼저 느린 템포에서 정확히 연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대충 빠르게 칠 수 있다고 한들 좋은 연주는 되지 못합니다. 그냥 대충 친거죠. 반대로 느리고 정확하게 치는 것은 그냥 ‘느리게 연주’한 것이고, 경우에 따라 얼마든지 독창적인 해석, 즉 좋은 연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실전에서는 좋은 연주고 뭐고 찍어서라도 하나라도 더 맞히는 게 정답이겠습니다만, 준비과정에선 진짜 실력을 키우는 게 우선입니다. 독해 정확도가 확보된 뒤에 속도 향상을 노리는 것(예컨대 앞서 적었듯 20분 빼놓고 풀기—저는 스터디에 지각해서 어쩔 수 없이 당했(?)습니다만, 좋은 연습이었던 것 같습니다)이 정석이라고 생각합니다.

4.2. 추리논증. 솔직히 각잡고 학원 같은 데서 준비한 건 아니라 문제 유형을 잘은 모릅니다만, 기출 두 바퀴에 실전 두 번을 경험한 뒤 생각해보기로는 대충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규칙 적용하기 (2) 논리관계 확인하기 (3) 연구방법론 (4) 어려운 문제 해결하기.(1) 법조문을 주고 사안에 적용하는 유형의 문제입니다. 첫 집리트를 풀면서 가장 낯설었고 고생했던 유형입니다. 수많은 조건의 중첩에 유의하면서 조심스럽게 판단해나가면 되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이 상황은 A 조건을 만족하는가? A 조건을 만족한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가?’와 같은 부분을 염두에 두면서요.(2) 논리학 관련 문제들입니다. 34개 맞았던 초시(2021) 때는 논리학 관련해선 '대우명제는 참이다'밖에 몰랐습니다. 그래도 p->q, ~q->~p 두 개만 갖고도 충분히 풀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는 거기에 '귀류법'이라는 신무기를 장착했고, 33개를 맞았습니다. 맞힌 문제 수가 줄긴 했지만, 논리 문제 풀이는 훨신 효율적으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복잡한 문제라도 p->q, ~q->~p, if (~p -> 모순), then p 세 가지를 적용하면서 차근차근 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단 (적용 가능한 경우) 보기나 제시문 등을 ‘갑->회계사’, ‘을->변호사’ 하는 식으로 형식에 맞춰 정리해두고 본격적인 풀이(‘변호사->회계사인가?’ 등)를 시작합니다.(3) 실험 설계나 약화/강화 같은 문제들입니다. 이건 대학원 공부의 덕을 크게 봤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연구방법론에서 밀의 방법(일치법, 차이법 등),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등을 배우면 추리논증의 연구방법론은 거의 날로 먹을 수 있습니다. 저같은 문과 출신의 경우 길고 복잡한 단백질이나 이온 이름 같은 것에 압도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배터리 관련해서 그놈이 그놈 같은 이온 이름이랑 산화 환원 작용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4) '다음과 같은 규칙으로 대회를 진행했을 때 틀린 진술은?', '갑, 을, 병, 정이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할 때 틀린 진술은?' 같은 문제들이나 'A를 완료하는 데 필요한 최소 시간은 n초이다' 같은 보기가 나오는 문제들입니다. 이건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리트 최강의 머리빨 문제 유형(?)이 아닐지... 저같은 경우는 문제를 읽어보고 '아 이렇게 접근하면 되겠다'하는 것이 보이는 경우 그대로 풀어서 맞히고, 아닐 경우엔 일단 조건에 맞게 그림, 표, 그래프(행렬)를 그리거나 형식논리학적(p->q)으로 나타내보고 이런 저런 시도를 해봅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뽑아낼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최대한 찾아보려고도 합니다(‘A 조건에 따르면 갑은 세 번째 순서로 올 수 없다.’ 등).개인적으로 추리는 집리트로 법조문 적용 유형에 익숙해지고, 재시 과정에서 귀류법 활용을 익힌 걸 제외하면 체감되는 실력 향상이 딱히 없어서 이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5. 작년에 불합격을 확인하고 받아들이면서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중에도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이 계실 텐데, 결국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실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고 나면, 결국에는 문제를 직면하는 것—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나아가 이를 이겨내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고, 만에 하나 그렇지 않더라도 금세 이겨내시길 바라고, 나아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시길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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